작년 이맘때쯤...
드디어 본과 3학년 1학기까지 모든 수업과정을 마치고 실습을 시작한다고
들떠있었던 내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의 위치는 병원 서관 2층의 위치한 의학도서관이 아니라
강의동 2층 제1강의실 3분단이 되어버렸다.
PK쌤이라는 칭호도 어느새 고시생이 되어버리고....
이렇게 빨리도 시간은 지나가는데, 아직도 내 마음은 방황하는 중인듯...
목표를 딱히 찾지 못하고 연줄에서 떨어져 나와서 방황하는 연이 바람에 몸을 맡긴 듯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지내는 것 같다.
고등학교때는 어떤 확고한 목표도 있었고 더 간단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목표를 설정하기도 어렵고, 너무 현실주의가 되어버린건지 자신감을 잃은건지
어떤 큰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 연연하는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어서 이러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아서 따라가도록 해야겠다...
타대학에서 지내고 있는 친한 친구의 비슷한 글을 보며...
나도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펌] 수험생
* 실습의 끝무렵, 병원을 돌아다니다 '이제 슬슬 공부 시작해야지 않겠어?' 하는 인턴 언니들의 진심어린 (장난으로 받아치면 때로는 정색하시는!) 조언을 들으며, 이미 발빠르게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착착_ 한권씩 퍼시픽을 풀어나가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솔직히 전혀 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메이저 실습을 다 끝내고 마이너만 남은 시점, 말PK의 배짱(?)으로 실습도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설렁설렁 돌면서 공부조차 놓고 있자니 어쩐히 마음 한 구석이 켕긴다. 해야 할 건 너무나 많고 이미 시간은 이렇게나 많이 지나버려,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조차 깜깜하다. 외과든 소아과든 산부인과든, 실습을 돌면서 제때제때 풀었어야 할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너무나 깨끗한) 퍼시픽들이 한권 두권 쌓이다 보니- 이것들을 과연 150여일 안에 푼다는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갑자기 후달리는 마음으로 퍼시픽 신장 파트, 동화 신장 파트를 두 팔에 안고 집 앞 시립 도서관을 찾았다. 급성 신부전부터 시작해 외워지든 안 외워지든 닥치는대로 읽고 쓰고 풀다보니, 문득 고3 때의 수험시절이 떠올랐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수능 문제집을 앞에 두고 공부에 몰두하는 이들이 도서관을 빽빽히 채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더없이 진지한 얼굴들이었다. 나도 저랬었나, 그들의 긴박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아련한 생각마저 들었다. 열심히 공부해 수능을 쳐서 대학에 입학하고도 6년이 흘렀으며, 그 사이 나는 참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으며 많은 것을 경험하며 여섯살이나 더 나이를 먹어버렸으나_ 어쩐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과연 이루어질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채우던 수험생 시절의 나로.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수능을 준비하던 때에 비해 지금은 훨씬 간절함이 덜하다는 것이다. 스물다섯의 나는 열아홉의 나보다 좋게 말하자면 평온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디다. 종일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사실 이런 날은 아주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어떤 특별한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끼지 못하고, 반면 쓰잘데없는 짓을 하느라 하루를 날렸거나 혹은 책상머리에 붙어앉아는 있었으나 도저히 효율이 오르지 않는 날에도 좌절감이 덜하다. 그것은 내가 의대 생활 6년을 지내오며 지치고 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편 그 때에 비해 훨씬 덜 절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 몇 문제 차이로 지역이, 전공이 뒤바뀌던_ 어쩌면 1년을, 2년을 더 투자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존재하던 수능에 비해 국시는 (아직은!) '웬만하면 붙는다'는 생각이 과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진학해야겠다는 나름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그 때에 비해, 지금의 나는 어느 병원 어느 과에 가야할지, 가고 싶은지조차 감이 안 잡히는 상태다 (실은 고민하기 귀찮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나를 도서관으로 몰고가는 모티브는 슬프게도 그저, 면허는 따야 하니까, 정도가 아닐까.
어찌됐든 본 4의 여름도 중반으로 치닫고 있고, 지지부진하게나마 이렇게 나의 수험 생활은 시작이 되었다. 문제를 풀고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6년전의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비가 오는 날에도 해가 쨍쨍하던 날에도 변함없이 학교 도서관을 꾸역꾸역 지키던 날들, 의연하게 모의고사 시험지를 채점하며 속으로는 은근히 긴장했던 하루들, 도서관을 벗어나 영화 한 편 보려고 며칠전부터 미리미리 계획을 짜던 일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짜릿했던 나름의 일탈 같은. 그 때의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은 어느새 잊혀지고 말아, 대학생이 되기 위해 준비하던 과정에서 느꼈던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들이 오히려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보람을 찾고 어제보다 더 발전한 스스로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기억이 너무 미화됐나-_ -) 그 때의 내가 참 대견하고, 내 곁을 지키며 지칠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던 그 때의 사람들이 새삼 다시, 참으로 고맙다. 의대생이 되기 위해 준비했던 날들만큼,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지금도 행복하고, 열정적이고, 후회 없는 시절이 되기를. 지루하고 지겨워도 평온하게 이겨내며, 오랜만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간이, 이 공부가, 앞으로 내가 보다 더 '좋은' 의사가 되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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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Real Me. Still Here. Alive ( http://flyfree.egloo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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