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면서 옛날부터 이만수라는 선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전설적인 선수였다고...
그리고 그가 미국에 코칭수업을 받고...
SK로 갔을때도...
솔직히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얼마 전 속칭 <팬티 퍼포먼스>를 할 때부터....
참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오늘...SLR에 갔다가 이만수 선수의 부인이 썼다는 글을 봤는데...
참 감동적인거 같아서 올려본다~~
(아 공부해야 하는데;; -_-ㅎ)
참 많이도 반대했다.
중년의 남자가 속옷차림으로 3만 관중앞에서 뛴다니....
게다가 TV중계까지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볼 것인가 생각하니 아찔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남편과 지내면서 그 속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일만큼은 속마음보다 겉으로 드러난 벗은 모습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가족이기 때문인가?
큰아이 대학졸업식 참석차 2주간 미국에 다녀와 보니
남편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일파만파가 되어 신문마다
<팬티 퍼포먼스> 이야기 였다.
화들짝 놀란 나는 남편에게 농담이겠지.. 하면서 물어보니
“문학구장이 꽉 차면 정말 하겠다”는 대답에 가슴이 철렁했다.
본인이 한다고 결정한 일에 얼마나 올-인하는지 잘 아는 나로써는
“이 남자가 정말 벗고 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나는 결사반대의 입장이었고
늘 긍정, 낙천적인 막내는 “아빠가 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라며
빙글빙글 웃기까지 했다.
홈 10경기째인 5월 26일을 D-Day로 잡고
팬들도 언론들도 남편이 속옷차림으로 야구장을 뛰기를
부추기는 (?) 분위기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구단이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넓은 문학구장이 절대로 꽉 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5월 22일에는 10년만에 대구구장에 아이들과 함께 갔다.
낯익은 대구 야구장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오니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치는지..
현역시절 16년동안 남편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대구 야구장에서
비록 유니폼의 색깔은 바뀌었지만 많은 분들이 보내준 박수와
운동장 안으로 쏟아지는 꽃다발을 보면서 야구라는 한길을 달려온
남편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공식 환영행사보다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였다.
아빠의 100호 홈런 시상식 장면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큰아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느라 코끝이 빨개졌었다.
대구에서의 감동도 잠시, 다시 인천으로 오니
“팬티 퍼포먼스”의 압박이 나를 잔소리쟁이로 만들었다.
안하면 안되냐?는 강경한 반대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한자리라도 비면 절대 하지말라는 선까지 양보는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벗어야 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26일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만은 않았다.
두녀석들도 조금은 긴장한 듯한 분위기이고...
그런데 그 긴장이 야구장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풀어지기 시작했다.
야구장으로 가달라는 부탁에 기사 아저씨께서
대뜸 <이만수>라는 이름을 거론했다.
인천에서 기사생활을 오래 했는데 오늘처럼
야구장 주변이 복잡한 것은 처음 보았노라며
<팬티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이만수를 보니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과 용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1회말쯤에 입장한 문학구장은 외야에 빈자리가 보여서
큰아이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회가 거듭할수록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고
4회에는 <문학구장 만원사례>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떴다.
3회때 먹었던 닭튀김이 명치에 걸리는 듯 했다.
5회 클리닝 타임.
드디어 남편은 속옷차림으로 운동장에 나타나고
나는 운동장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와 한편이 되어 반대하던 큰 아들이 열심히 사진기 셔터를 누르며
“엄마! 아빠 좀 보세요” 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서 본 운동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뛴 것은
남편보다는 남편과 같이 기꺼이 속옷차림이 되어준 팬들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남편의 쑥스러움을 덜어준 그분들께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흘러나온 음악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였다.
맞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남편이 팬들과 함께 운동장을 도는 4분여의 시간이
나에게는 참 길게 느껴지면서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남편이 원하는 일이면 뭐든지 할수 있는가? 하는....
마음은 아내로서 당연히 그렇지만
실생활에서는 때로는 야당 당수같이 구는 아내였다는 후회가 들었다.
환호나 갈채를 많이 받는 직업 때문에 행여 남편의 눈과 귀가 가리워질까
비난이나 비판의 기사, 댓글을 꼭꼭 챙겨서 읽고, 전해주고,
조심하기를 당부하고 그렇게 지내온 현역시절이었다.
내가 그렇게 야당스럽게 (?) 굴지 않아도
잘 해낼수 있는 남편이였는데........
올해로 결혼한지 벌써 25년, 은혼식을 맞는다.
앞으로 남아 있는 세월동안에는 나도 남편말이 무조건 맞다고 맞장구 좀 쳐주며
살아도 되는 나이가 된 것도 같다.
남편은 헐크라는 별명과는 다르게 무척 자상하고 다정한 편이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때도 봉투에 돈만 넣지 않고
사랑의 편지를 써서 주고, 아이들이 원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긴 --- 랩송을 함께 들어주는 눈높이 아빠이다.
꽃다발을 받을때마다 파 한단 ,열무 한단 값을 먼저
떠올리는 아내에게 수시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꽃다발을 안겨주는 남편이다.
아들 또래인 SK 젋은 선수들을 호칭할 때는
늘 “우리 애기들” 이라고 하며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이다.
경기를 마치고 나온 남편에게
내가 해준 첫 마디가 “당신 멋있네~” 였다.
고맙다, 훌륭하다, 잘했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멋있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 해보았는지
남편이 깜짝 놀라는 기색이다.
나이든 여자들도 “아름답다”는 말에는 기분이 좋아지듯이
남자들도 나이가 들어서도 멋있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그일> 이후 인터넷에 올라 온 수백, 수천개의 리플을 읽으면서
남편의 벗은모습 보다는 남편의 마음을 읽어준
야구팬들이 너무 많아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특히나 40대 50대 중년에 접어든 분들의 격려가 가슴에 남았다.
남편의 나이는 숫자상으로 분명히 중년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꿈꾸는 청년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미국 사람들이 붙여준 빅 스마일이란 애칭도 남편의 그런 마음에서
부터 나온 것이리라.....
웃을 거리가 있어 웃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답답하고 막힌듯 해도
마음의 꿈을 생각하며 먼저 웃기로 작정한다.
남편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스타선수 였다고는 하지만
마냥 탄탄대로만 달린 야구인은 아니다.
그러나 힘든 고비마다 좋은 야구인으로 야구장에 남겠다는
남편의 꿈이 늘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남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전에 인기있었던 순정만화 <캔디>의주제곡이 떠 오르곤 했다.
“괴로워도 슬퍼도 난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라
내 이름은 내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캔디 대신 만수를......)
팬티 퍼포먼스 전날 초저녁 잠이 많으신 시어머니께서
늦도록 잠을 못 이루시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에미야, 애비 속옷 단단히 입혀 보내라”.........
온 가족들이 염려하던 <팬티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니 내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그날 속옷 차림으로 같이 뛰어준 팬들,
절대 만원이 되지 않기를 바랬던 내 소원을 무너뜨린 인천 SK팬들,
적군이라 할수 있는 상대팀 코치에게 꽃까루까지 뿌리며 격려해 주었던 KIA팬들.
세심한 준비로 <팬티 퍼포먼스>를 빛나게 해 주었던 구단 프런트분들,
좋은 댓글로 남편을 힘나게 해주었던 모든 분들께
<팬티 퍼포먼스>를 반대했던 가족들을 대표해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헐크 아내씀..